태생적으로 품성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화를 해보면 이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상대가 연막을 치고 나오면 도리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를 잘못 판단해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분명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품성이 좋은 사람은 느낌으로 알게 됩니다.

그냥 필이 꽂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필은 이성을 보고 받는 필과는 다릅니다.

달뜸이나 열정이 배제된 이성적인 필이거든요.

살다보면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괜히 흐뭇해지고 흉내라도 내고 싶은 사람을 말입니다.

평소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을 몇 사람 정도 알고 지냅니다.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고민도 털어놓고 푸념도 합니다.

변방으로 내려온 이후로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전화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지만 왠지 품성이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그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치권에 발을 담그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지상파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잠재적인 대권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입니다.

변호사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고 하니 변호사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군요.

그를 품성이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은 오래전입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 당시부터이니까요.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보인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이 그의 품성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언론을 통해 자주 등장했지만 이미지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거나 희석되기 마련입니다.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공인의 경우는 더합니다.

이미지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는 늘 변화가 없었습니다.

주요인물로 뉴스에 등장한 때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보여준 소탈한 모습은 그의 품성을 그대로 말해주었습니다.

아내와의 연애와 결혼과정을 소개하면서 ‘갈 데까지 갔기 때문에’라고 말하더군요.

점잖지 않은 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혀 천박한 느낌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것은 그가 가진 품성 때문일 겁니다.

진솔함에 기반한 진정성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의 인생이 궁금해졌습니다.

해서 지난해 출간된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출간 당시 화제가 됐던 책이라 읽어보려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손에 들었습니다.

그의 품성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더군요.

반성과 성찰이라는 삶의 바탕이 그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문재인 변호사의 부모는 이북 출신입니다.

한국전쟁 통에 고향을 잃은 실향민입니다.

객지에 빈손으로 내던져진 처지로 가난과 씨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실향민이 그랬듯이 인생이 고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켰던 철학이 있었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은 자식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문 변호사의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와의 새벽길 동행 얘기입니다.

어느 여름날 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그는 잠을 깨운 어머니를 따라 영문도 모른 채 부산역으로 갔습니다.

버스도 다니기 전의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어림잡아 7km 정도 되는 깜깜한 길을 걸어서 갔습니다.

가면서 어머니는 그에게 말합니다.

일요일 서울 가는 특급열차 차표가 귀해 미리 사두려 한다는 겁니다.

표를 못산 승객에게 웃돈을 얹어 팔면 돈벌이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암표장사를 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표를 팔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지켜보다가 그냥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일언반구 말도 없이 돌아오고 그게 끝이었습니다.

이후 모자는 그 일에 대해서 서로 함구합니다.

그러다 책을 쓰면서 문 변호사가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때 왜 그냥 오셨냐고.

어머니의 대답은 “듣던 거 하고 다르데”였습니다.

문 변호사 어머니의 깊은 속내를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때의 “듣던 거 하고 다르데”라는 말은 다른 표현이었을 겁니다.

‘이건 아니다’라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현실이 부대끼더라도 넘지 말아야할 선을 그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래서 문 변호사가 품성이 좋은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만약 어머니가 주춤하고 돌아서지 않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지금의 문 변호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성향이 있으니 괜찮은 사람이 될 수는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반듯한 품성을 가진 사람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문 변호사는 말합니다.

가난의 기억이 살아가면서 그대로 인생의 교훈이 됐다고.

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고.

그것이 운명 같은 것이라고.

문 변호사는 오는 4월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앞일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12월 대선의 유력주자이기도 합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인 정치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열렬한 지지도 있겠지만 많은 비난과 비판의 화살이 날아올 겁니다.

때론 사실관계가 전혀 맞지 않는 이슈로 음해도 당할 수 있습니다.

정치의 속성을 모르지 않겠지만 이런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가 지금의 품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 변호사에 대해 ‘듣던 거 하고 다르데’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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