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삼성반도체 백혈병 근로자 산재 인정

"일부 공정 근로자, 유해물질에 지속 노출"

“이권 확보를 위해 뇌물을 제공해선 안 된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기업이 정치적, 경제적 곤궁해질 때 이를 인수해도 안 된다. 술 담배처럼 건강을 해롭게 하거나 인명살상 같은 무기 생산을 해서는 안 된다”

삼성의 창업자인 고 이병철 명예회장의 3가지 유훈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제공한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유훈을 설명한바 있다.

이 유훈 가운데 3번째 해당하는 술, 담배보다 더 건강을 해롭게 하는 사건이 삼성전자에서 발생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진단을 받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산업재해’를 방치해오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진창수)는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모씨, 이모씨의 유족과 현재 투병중인 김모씨 등 8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고(故) 황씨와 이씨 등 2명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황씨 등이 근무하던 공정에서 각종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고 이런 물질이 모두 외부 배출된 것으로 보기 어려워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황씨 등은 기흥공장 3라인 3베이에 설치된 수동설비에서 근무했다. 일하는 과정에서 유해화학물질에 더 많이 노출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극히 미약하지만 전리방사선에도 노출된 것으로 보여 이런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일으켰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 측이 2006년 6월 뒤늦게 유기화합물 감지시스템을 구축했다. 황씨 등이 근무한 3라인의 경우 시설이 가장 노후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설사 유해화학물질 노출량이 허용기준보다 적었다 하더라도 개인 면연력에 따라 백혈병이 발병할 수 있다"면서 "황씨 등이 오랜 기간 기흥공장 3라인에 근무하며 백혈병이 발생했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됐다 볼 수 있어 질병과 업무사이에 상당인과 관계가 있다.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나머지 피해근로자들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절단·도금 공정, 엔지니어 등 황씨 등과 다른 업무를 맡아 직접적인 발병 원인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번 재판에서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근로자들은 판결 직후 "일부 산재가 인정된 것은 희망적이다"면서도 "각자 맡은 공정이 다르더라도 작업환경은 같았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추가 입증자료를 더해 끝까지 싸우겠다"며 항소의지를 밝혔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측에 따르면 삼성전자·삼성전기에서 일하다 백혈병·유방암·난소암 등에 걸린 암 피해자만 현재까지 약40명에 달하며 그 중 13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현재 삼성반도체 온양공장과 삼성LCD 기흥·천안공장에서 근무하다 뇌종양 등을 앓게 된 근로자들도 행정소송을 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유해화학물질 노출은 담배와 술 보다 인체에 훨씬 나쁘다. 노동자들은 꿈꾼다. 쾌적한 환경을 통해 일하고 싶어 한다. 또 회사가 노동자를 소모품이 아닌 인격체로 대우해주길 바란다. 이것이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 명예회장이 꿈꾸는 아름다운 기업 ‘삼성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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