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맞춤형 종합자산관리계좌인 자문형 랩 시장에 발을 내딛으면서 증권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아직 상품 출시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돌풍은 불지 않았지만 점차 주식형펀드 고객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자문형 신탁 판매에 나설 경우 우량 고객(VIP)를 두고 은행권과 '대전(大戰)'은 불가피하다.

증권가에서는 자문형 시장의 규모가 커질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자문형 랩 상품을 은행권가 차별성을 홍보하는 등 고객 지키기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자문형 신탁은 사실상 자문형 랩과 같은 상품이다. 최근 은행에 '자문형 특정금전신탁 표준약관(계약서)'이 승인되면서 자문형 랩과 비슷한 자문형 신탁을 팔 수 있게 됐다.

증권사, 자문형 랩 잔고 '쑥쑥'

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업계 1위인 삼성증권의 자문형 랩 잔고는 지난해 말 2조7000억원에서 5월 말 3조5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말 7997억원에서 1조2325억원으로, 우리투자증권은 8900억원에서 5월 말 1조3200억원으로 각각 1.5배 증가했다.

이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7613억원에서 올해 5월 말 1조2185억원으로, 대우증권은 3040억원에서 5420억원으로 늘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말 1577억원에서 4188억원으로, 푸르덴셜증권은 1848억원에서 3666억원, 신한금융투자는 621억원에서 2095억원으로 급증했다. 하나대투증권은 5월 말 현재 잔고가 2601억원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자문형 랩 잔고는 지난 해 12월 말 5조2411억원에서 3월 말 8조23974억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1월 말 2조151억원이 늘었다가 2월에 주가 조정으로 285억원이 감소한 뒤 3월에 다시 1조1696억원이 증가했다.

증권사 은행권 신탁 등장에 '긴장'

은행권이 자문형 신탁 판매에 나서면서 증권가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은행은 증권보다 지점이 많기 때문에 접근성이 뛰어나고, 신뢰도가 높다는 점이 장점으로 나선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최근 은행 금리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거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자산 배분과 관리할 수 있는 툴이 생겼다"며 "증권사는 은행에 비해 판매망이 약한 점이 열세"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당장 판매망 측면에서 위협 요인으로 나서지만 증권사들은 자산 관리 측면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다는 입장이다. 은행과 달리 매매 수수료가 없고, 주요 자산이 주식인 만큼 은행보다 탄력적으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문형 랩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증권 관계자는 "자문형 신탁에 존재하지 않은 주식 매매 수수료와 성과 보수가 없고, 신탁과 달리 고객 명의 계좌로 직접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며 "풍부한 외주 자문사 풀과 고객 성향에 맞는 다양한 포트폴리오 제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결국 자문형 랩도 주식에 투자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회사에 운용역이 있으냐의 없느냐 문제도 추후 상품 관리에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며 "은행권이 자문사의 지시를 받아서 주문을 내는데 그친다면 증권사는 운용역을 통해 필터링을 거치면서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증권은 중국 현지 자문사와 양해각서를 맺고 중국에 투자하는 자문형 랩을 출시하는 등 차별화된 상품을 통해 여전히 시장을 선점한다는 방침이다.

자문형 랩 시장에서 2,3위를 다투고 있는 미래에셋증권 배준영 랩운용팀장은 "증권사의 자문형 랩은 자문형 신탁과 유사하지만 운용, 관리, 구조상 앞서가고 있다"며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자산관리 상품이라는 점에서 증권사의 인력 인프라가 우위에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자문형 신탁의 경우 매매를 할 때 은행이 특정 증권사의 매매를 주는 방식이고 장 마감 후 운용지시를 통해 계좌에 들어오는 방식이다보니 기존 자문형 상품의 장점이었던 실시간 계좌잔고 조회, 실시간 즉시 해지, 즉기 추가 입금 매수 등 고객 개별 요청 사항에 대한 반영이 어렵다는 것도 장점으로 나선다.

일각에서는 은행권의 자문형 신탁 판매가 자문형 랩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은행의 자문형 신탁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당분간 판매 추이를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 즉 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서는 은행과 증권이 경쟁하면서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진다"며 "증권사들은 은행에 대응해 시장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자문형 랩 상품을 적절한 때에 내놓은 것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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